十一 世;縣監公 諱昌柱 之墓 ,配 淑人光州朴氏上下兆

               (현감공 휘창주 지묘,배숙인광주박씨 상하조) 계보 보기

                                         소재지;전남 장성군 장성읍 단광리 후등

          

縣監公 諱昌柱 墓表   譯文(역문)

      여기는 옛 鎭海縣監 朴公 昌柱(진해현감 박공 창주) 字는 國幹(국간)의 묘이다.

    譜記(보기)에  의하면 장성군 단광리 뒷산 亥坐(해좌)에 있고 생졸의 년월은 譜牒(보첩)에 실려 있지 않으나 중종 丙子

    (병자)1516년에무과에 오른 것으로 미루어 보면 졸년대가 明宗朝(명종조)와 宣祖(선조)때 인가보다. 그당시 큰 난리가

    있어서 譜記(보기)에 다 갖추지 못하고 간략히 실려 있는데  진해 현감을 역임했고 重厚(중후)한 德量(덕양)이 있는

    분이다" 하였으니 가히 公은 백세를 지난 오늘에서도추앙할만 하도다. 이제 그 후논들이 수백년간 碑碣(비갈)를 갖추지

    못한 것을후회하면서 餘錄(여록)을 더듬어 비를 갖추게되니  과연 公은 賢人(현인)이로다. 진원인은 고려때 대장군을

    지낸 진문이 시조이며 그 후손 대대로 높은 벼슬에 오랐고 휘 첨에 이르러서는

    익양백으로 문하시중을 지내셨다. 휘 홍서는 절도사이고 휘온은 진사로 通政大夫行 求禮監務(통정대부행 구려감무)이다

    태종때 직제학인 위남선생은 공의 증조 이시다. 조는 곤생인데 진사요 고는 근지 호는 돈재 대호군인데 문학과 효행으로

    이름나시고 비는 숙인하음이시로 유림의 딸이다. 공의 부인은 광주박씨인데 묘소는 한벌안 上.下비이다.

    6남1녀를 두었는데 장방에 한충(현감)은 효행이 篤實(독실)하고 한경,한무,한유,한은,한혜사위는 현감 김응정이다.

    큰아들 손에 원효는 무과로 첨정을 지냈는데 丁酉再亂(정유재란)에 殉節(순절)하니 병조판서에 贈職(증직)되었다.

    사위는 승지인 김대성 이다.次男孫(차남손)에는 대효와 성효이로 三男孫(삼남손)에 佑는 무과로 判繕工監(판선공감)과첨정     으로 계시다가 정유란에  일본국에 포로가 되어 절개를 지키어 20여년만에 귀국하니 충열의 시호를 받았으며 四男孫

    (사남손)에 순효이고 五男孫(오남손)에 인효가 잇고 외손은 심잉성이다.증손 승종은 병마 절도사로 임진란에 임금을

    扈駕(호가)한 공상으로 일등공신이되어 병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양소의 시호를 받앗다 아! 공의 집안은 훌륭하도다

    이제 공은 繁昌(번창)한 后裔(후예)들이 석의를 갖추고자하니 묘소가 너무 높은곳에 자리하고 있어 運搬(운반)에 어려움이     있음므로 큰 비석을 세우지 못하고 작은 비에 기술 하고자 나에게 글을 청하니 송현과 천호,남선 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