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淸溪亭(청계정) 전남 잔성군 진원면 산동리 신촌245 -1     계보 보기

   

 

 淸溪亭記(청계정기문)

 

 

        영남과 호님지방에 살면서 세상에 이름난 군자가 많으되 淸溪(청계) 朴 先生(박선생)<박원순>같은

     篤行(독행)하고 아름다운 업적을 갖춘분이 없었을 것이다.

        아! 선생은 淸白家(청백가)의 後孫(후손)으로 詩(시)와 禮(예)를 익히고 일찍이 생원이 되어

     벼슬을 좋아하지않아 科擧(과거)도 포기하고 性理學(성리학)을 연구 하였다.

        河西(하서)김선생 門下(문하)에서 배움이 날로 成就(성취)되고道學(도학)이 더욱 빛나

     사림에서 孔夫子(공부자)의 제자 顔子(안자)와 비슷 하다고 하였다.

     진원땅 남쪽 淸溪(청계)위에 정자가 높이 솟아 있으니 즉. 청계선생이 즐겨 놀던곳이다.

     壇(단)옆에는 은행나무가 서 있어 綠陰(녹음이 千才(천재)이나 되고 못에는 아홉구비의

     물을 끌어들여 淸流(청류)가 구비를 쳤다.

        여기서 선생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날로 즐기며 學問(학문)을 講論(각론)하고 孝友(효우)를

     가르쳐 草尙(초상)의風(풍)<백성을敎化(교화)>을 일으키니 이 고장 風俗(풍속)이 날로 좋아졌다

     선생의 功(공)이 이에 큼을 알 수 있다 그 정자를 이름하여 淸溪亭(청계정)리라 함은무슨 뜻인고 하니

     淸(청)은 葦南公(위남공) 가훈으로 전해온 법이요 .溪(계)는 원천물이 많아 흐름이

     쉬지 않는다는 뜻인라.아름답도다 시냇물의 맑음이여! 可(가)히 公(공)의 갓끈을 씻을 만하도다

     대단하도다! 公(공)의 학문이여 시냇물이 모여 쉬지 않고 흐를 것을 믿노라.

     아! 선생의 높은 기풍은 정자와 같이 높고 물같이 길게 흐를 것이다.

     내가 이세상에서 선생의 遺風(유풍)을 들은지 오래이다.

     이에 苦干文字(고간문자)로 아름다운 학문의 萬分之一(만분지일)을 우러러 기술하노라

         - 崇禎紀元後三巳酉(승정기원후삼사유)(1789년)季冬(계동)  通訓大夫行司諫院(통훈대부행사간원)

                                                                                     正言(정언) 金星甲(김성갑) 지음.

▣ 淸溪朴先生 丁享祝文(청계박선생정향축문)

         대대로 아름난 덕행이여 의지가 弱(약)한 사람을 깨우치고 氣風(기풍)을 높이게 하도다

     우물이 마르고 나무가 枯死(고사)하니 하늘과땅의 神靈(신령)도 마음을 느끼어 알게되었도다.

전설

        진원면 산동 부락 앞을 지나노라면 아담한 정자 하나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조선 선조대에

     진원박씨 위남공의 후손이며 김하서 선생의 제자인 청계 박원순 선생이 세운 것이다.

     선생은 학문과 도를 깊이 터득했으며 또한 도량이 크고 항상 대담한 용기를 갖고 바른 길을 걸어온 분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라 정세는 부정한 것이 득세하여 기품이 곧은 선생이라 벼슬길을 저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산동 어귀에 정자를 지어 소일하니 이것이 바로 청계정이다.

        선생은 손수 은행나무를 심고 앞에는 크나큰 방죽을 파 구곡수를 끌어들여 홍교를 놓고 화단엔 백일홍을

     심어 정원을 만들어 하나의 별장을 이루었으며 거기에서 항상 벗들과 더불어 시를 읊고 고향의 풍속을

     바르게 하는데 힘썼다.

        선생이 별세 하자 여기에 하나의 이변의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선생이 별세 하자 여기에 하나의 이변의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선생이 별세하시자마자 그렇게 많이 핀 은행잎이 하나도 피지 않고 항상 샘솟는

     방죽의 물도 말라 버렸다.

        이에 사람들의 호기심과 의혹 속에서 세월이 흘러 어느새 선생의 3년상을 마쳤다.

     그런데 그때부터 모든 것이 선생의 선조 때의 그대로 은행잎도 피고 방죽도 옛날로 돌아왔다.

     이것만 보아도 선생은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자연물을 몹시도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생의 기품이 곧고 청백했기 때문에 자연의 나무와 물까지도 그렇게 감화되지 않았는가 한다.

     현재는 정자안에 비바람 속에서도 노사선생과 관서 선생의 글이 담긴 현판이 빛을 내고 있는데

     정자 앞 방죽은 이제 메워져 논이 되어 버렸다.

 

 지 정 : 문화재자료 제97호(1984. 2. 29)

 규격 및 크기 : 정면 2칸, 측면 2칸

 양식 및 구조 : 전통한옥, 팔작지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