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박씨(忠州 朴氏)

시조 박영(朴瑛)은 신라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 박언창(사벌 대군)의 10세손(박혁거세의 39세손) 박견의 손자이다. 그는 고려 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부정을 지냈다. 충주는 고구려 영토(領土)로 국원성이었는데 신라 유리왕 때 점령(占領)하여 진흥왕 때 소경(작은 서울)으로 하고, 귀족인 박씨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다. 그래서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면서 상주(尙州) 박씨(朴氏)에서 분관하여 충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대표적 인물]

박상(朴祥) : 청백리(淸白吏)에 올랐다.
박순(朴淳) : 대제학(大提學)과 영의정(領議政)을 역임하였다.

그밖에 박우, 박희수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 20명의 문과 급제자와 1명의 상신과 대제학, 1명의 청백리를 배출하였다.

[항렬표]

65세

66세

67세

68세

69세

70세

재(載)

제(濟)

하(夏)

종(鍾)

근(根)

규(奎)

원(原)

우(愚)

종(鍾)

근(根)

기(基)

수(洙)

용(容)

석(錫)

래(來)

규(圭)

열(烈)

환(煥)

1985년 현재 23,617명이 있다.




태안 박씨(泰安 朴氏)

시조 박원의(朴元義)는 신라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첫째 아들 박언침(밀성대군)의 9세손인 박을재(삼사좌윤)의 후손으로 박원효(세흥군)의 아우이다. 그는 고려 시대에 광록대부(光祿大夫)상서 좌복사로 공을 세워 태안군에 봉해져서 후손들이 본관을 태안(泰安)으로 하였다.

[항렬표]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영(榮)

환(煥)

형(衡)

재(載)

석(錫)

호(浩)

동(東)

희(熙)

찬(燦)

1985년 현재 4,498명이 있다.




태인 박씨(泰仁 朴氏)

시조 박언상(朴彦祥)은 신라 경명왕의 첫째 아들 박언침(밀성대군)의 8세손이며, 검교대부 박찬행의 둘째 아들로서 고려 문종 때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지냈다. 그의 8세손 박거인이 고려말에 인의현으로 유배(流配)되어 그곳에 정착하여 살게되면서 그의 증손(曾孫) 박연생이 본관을 태인으로 하였다. 중시조는 그의 후손 박현손(朴賢孫)이다.

[대표적 인물]

박수량(朴遂良) : 박현손(朴賢孫)의 증손자로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좌찬성과 중추부지사를 역임하고 청백리(淸白吏)에 올랐다.

[항렬표]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만(萬)

용(容)

균(均)

구(求)

래(來)

섭(燮)

재(在)

영(永)

상(相)

희(熙)

1985년 현재 588명이 있다.




평산 박씨(平山 朴氏)

시조 박지윤(朴智胤)은 고려 태조의 왕비(王妃) 박씨의 아버지로 벼슬은 삼중대광 시중에 이르렀으며, 평산(平山)에 대대로 살았기 때문에 평산을 본관으로 하였다.

1985년 현재 1,274명이 있다.




평주 박씨(平州 朴氏)

시조 박수경(朴守卿)은 원윤(元尹)으로 평주에 침입(侵入)한 견훤을 격퇴(擊退)한 공으로 개국공신(開國功臣) 평주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평주를 본관으로 하였으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어져서 박광염을 1세 조상으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박수경(朴守卿)을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이라 고증할 만한 것이 없는 상태이다.

[항렬표]

20세

21세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호(鎬)

순(淳)

모(模)

병(炳)

규(圭)

종(鍾)

태(泰)

상(相)

열(烈)

균(均)

1985년 현재 113명이 있다.




평택 박씨(平澤 朴氏)

시조 박지영(朴之永)의 선조는 신라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 박언창(사대대군)의 후손이라 하나 기록이 없는 상태이고, 박지영이 조선 시대에 평택현사를 지내고 그의 아들 박산이 형조참판으로 1456년(조선 세조 2년) 경원으로 유배(流配)되어 그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평택(平澤)으로 하였다.

[항렬표]

52세

53세

54세

55세

56세

57세

58세

59세

60세

61세

62세

세(世)

윤(潤)

장(章)

경(慶)

재(載)

인(仁)

시(時)

주(柱)

철(喆)

균(均)

상(商)

순(淳)

래(來)

치(治)

1985년 현재 1,153명이 있다.




함양 박씨(咸陽 朴氏)

시조 박언신(朴彦信, 속함대군)은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셋째 아들이나, 문헌이 없어져서 고증을 하지 못하고 고려(高麗) 때 예부상서를 지낸 박선(朴善)을 중시조로 하고 1세 조상으로 하였으며, 속함이 함양으로 개칭되자 본관을 함양(咸陽)으로 하였다. 고종 때 이연년(李延年)의 난(亂)을 평정한 공으로 응천군에 봉해진 박신유의 여섯 아들에서 6파로 갈라졌으며, 세칭(世稱) '육지파(六之派)' 라고 한다.

중시조 박선(朴善)의 묘소(墓所)는 경상남도(慶尙南道) 함양(咸陽)군 함양읍 사금동에 있다.

[계파]

군기소감공파(軍器少監公派) : 박지문(朴之文)

문원공파(文元公派) : 박지빈(朴之彬)

판삼사사공파(判三司事公派) : 박지량(朴之亮)

부사공파(副使公派) : 박지수(朴之秀)

어사공파(御史公派) : 박지온(朴之溫)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 : 박지영(朴之穎)

[대표적 인물]

박충좌(朴忠佐), 박초, 박습, 박대립, 박세영, 박세무, 박세옹, 박민헌, 박헌(朴軒) 등이 있다.

조선 시대에 69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항렬표]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진(鎭)

현(鉉)

한(漢)

태(泰)

상(相)

주(柱)

찬(燦)

재(在)

석(錫)

철(澈)

채(采)

혁(赫)

균(均)

1985년 현재 103,220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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