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甘井齋(감정재)諱文基齋室(휘 문기재실)전남 보성군 노동면 감정동 하감정 (2004.9.27촬영) |
감정리 마을표석 하감정 마을형성유래 甘井齋實記(감정재실기) 계보 보기 보성읍에서 서쪽으로 노동면 감정동 乾坐(건좌)에 자리한 四尺封墳(4척봉분)은 즉 우리 十五世祖直長府君 (15세조지장부군)이萬年(만년)계실 宅兆(댁조)이다.사방에 群峰(군봉)이 애워 쌓아 있고 앞으로 長江(장강)이 흐르니 世上(세상)에서 말하는 牛眠吉地(우면길지)이다. 예전 초가 齋室(재실)에서 齋宿(재숙)을 하였는데 오랜 歲月(세월)동안 頹落(퇴락)되어 후손들이 重建(중건)을 하려고 미루어온지오래되었다.族第璂鉉(족제기현)이 처음 거론하기를 「이 할아버지 후손이 수천명이 넘으나 사방에 흩어져 살기 때문에 모이하기가 어렵고 또한 合力(합력)을 기다린 즉 이일은 종래 이루지 못할 것이라」 하고 奮然(분연)히 일을 經營(경영)하였다. 辛卯(신묘)가을에 시작하여 다음해 봄에 竣工(준공)하니 齋閣(재각)은 四間(4간)에 東西(동서)에 房(방)을 놓고 中間(중간)二間(2간)은 마루이다. 門間(문간)은 三間(3간)으로 하고 기와를 이었다. 守直(수직)할 집을 짓는데는 諸孫(제손)들이 苦干(고간) 도와줬을 뿐이다. 齋閣規模(제각규모)는雄壯(웅장)하고 수려하니는 않으나 여기서 可(가)히 祭需(제수)마련도 할 수 있고 齋宿(재숙)도 할 수 있으며 또한 講學(강학)이나 會合(회합)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찌 세상에서 못할 일을 과분하게 했다 하리요. 슬프다 倫理(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利欲(이욕)에 팽창한 이때에 璂鉉(기현)은 能(능)히 巨財(거재)를 드려 數世(수세)동안 못다한 일을 이루니 누가 賢孝(현효)한 삼람이라고 아니하겠는가? 況次(황차) 家勢(가세)가 넉넉지 못한데다가 縮衣節食(축의절식)해가지고푼돈모아 수년동안 計利(계리)하여으니 그苦心血誠(고심혈성)이야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일가들이여 璂鉉(기현)의 爲先(위선)하는 정성을 본받아 선조를 생각하며 덕을 닦아서 위로는 先業(선업)을 이어받고 아래로는 후손에게 넉넉하게 끼쳐줌이 大孝(대효)가 되느니라 나는 이에 깊이 감동하여 諸宗(제종)에게 勸誘(권유)하오니 밤마다 생각을 가다듬고 계속 노력해 주기 바란다.
--- 壬辰(임진)(1952년) 3월 15세손 璟鎭(경진) 謹識(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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