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永慕齋(영모재) 諱蒙亨齋室(휘몽형재실)     전남 보성군 웅치면 봉산리 삼수(관동)계보 보기

永慕齋重建記(영모재중건기)

       보성에서 남쪽으로  熊山(웅산)의 동쪽이며 鶴山(학산)의 서쪽인 聖主峰(성주봉)아래 높이 솟은 한집이

    우리 農隱先祖(농은선조)의묘각이다. 이름하여 영모재라 함은 옛 이름을 그대로 懸板(현판)한 것이다. 모든 사람의

    신체는 할아버지 유분이 아님이 없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세대가 멀어지면 그의 모습을 접할 수가 없으며  음성을 들을 수도 없어 泯然(민연)히 자취가

    없어지고 曠然(광연)히  기약할 수 없으니 流通(유통)하고 感應(감응)할바는 오직 그 생각함에 있을뿐이다.  

    그 雨霜(우상)을 밝고 나면 슬프고 처량하게 되니 사모한 바이니라. 기유분을 이끌 때 不虧不辱(불휴불욕)함은

    그 사모함을 이룰바이다. 詩(시)에 이르기를 「孝思(효사)를 永言(영언)하라」하고 傳(전)에 이르기를「忘(망)은

    근본을 일으킨다」하니 사모하고 잊어 버린 사이에 인륜의世敎(세교)가달렸으니 어찌하리요? 그럼으로 성인이

    제사모시는 예를 마련하고 왈 이치는 밝아야 하고 정성은 다해야 하니 氣(기)가 같기 때문이다.

       이 氣(기)는 천지간에 가득하여 조금도 欠損(흠손)함이 없느니라 . 때 인즉 시절의 感人(감인)한 것이 예민하여 춘추의

    변화와 우상이 내릴 때 그 근본을 생각 않할 수 없느니라. 이 재각은 지난 壬寅(임인)에 創建(창건)하고 이제 巳卯年

    (사묘년)에 중건하니후손들이 守護(수호)한지  근 백년이 된다.  수호의 절차는 어려운 것이다 때로 올라 살펴보니 높은

    봉우리와 낮은 산들이 앞으로揖(읍)하고 뒤로 拱手(공수)하며 들과 林壑(림학)들이  좌우로 펼쳐지고 도시의 먼지가

    막지 않아도 끊기니  안개가 曠遠(광원)하여 모든 것이 넉넉하니尊祖(존조)하고 合族(합족)할 마음이 油然(유연)히

    우러나고 孝悌(효제)하고 敦睦(돈목)한 행실이 절로 실천된다.

       先祖考 三溪府君(선조고 삼계부군)께서 지은 序文(서문)속에 잘 기록 되었으니 더욱 붙일 것이 없다. 이에 이은 것은

    뒤사람 더러서로 勉勵(면여<힘쓸>)하라는 것이다. 竣工(준공)을보고 興感(흥감)하게 되니 잠시나마 선조를 잊을 수가

    없다.산에 가득한 松栢(송백)과 一洞(일동)의 연기 구름이 다나와 同氣(동기)가 아님이 없으니 어찌 雨霜(우상)을 격어야

    될일이요 밝고 환함이 틀별할뿐이며 느끼고 또 追感(추감)하여 農隱公(농은공)의 世德(세덕)에게 바친다 생각을

    거듭하고 잊지 않으면 이집이 날로 새로워 질 것이니 어찌 기문을 기다리오 이어 詩(시)를 지은다.

       棟宇(동우)가 거듭 새로워지니 이제 뜻이 이루어지다 시란 感物9감물)이 아니지만 불평을 말한다. 달마다 모여

    講修(강수)하하니 敦睦(돈목)한 뜻이요 때로 오라 省掃(생소)하니 敬募(경모)한 정성이다. 산세가 屛風(병풍)처럼 펼치니

    봄비가 活(활)하고 川流(천유)가 둘르니 暮雲(모운) 나는구나세상이 여러번 섭한 것을 어찌 혐의하리 永世(영세)토록

    守護(수호)할 것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辛巳(1941년) 陽復月哉生明(양복월재생명) 後孫(후손)  榮 柱 (영주)  謹識(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