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遠慕齋(원모재) 泗川公諱挺榮齋室(사천공 휘정영재실)전남 고흥군 두원면 학림리

遠慕齋記(원모재기)

       錦山(금산)의 터에 재각을 세우고 이름하여 원모재라 하니 이는 진원박씨의 묘각이다.

    泗川縣監 朴挺榮(사천현감 박정영)을 처음여기에 묻고 아들 通德郞 東老(통덕랑 동노)를 따라 葬事(장사)해온지

    오래이다. 아직껏 시제때 제계와 목욕할 장소가 없었는데 후손 璟鎭(경진)이 전 집안과 모의하고 준공하게 됨에  

    나의 기문을 청하였다.

       살피건덴 泗川公(사천공)은 명종초에 나쁜 제도가 橫行(횡행)하고 나쁜 무리들이 執政(집정)하여 宋尤菴(송우암)같은

    이도 그내들에게 곤욕을 당하였다. 대소신하들이 그를 두려워서 말도 못하고 지내는 것을보고 공은 一介末職(일개말직)으로

    氣義所發(기의소발)에 그들의 擅權(천권)한 세력을 면박하다가 鰐水蛇山(악수사산)을 樂土(악토)처럼 여기고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의 정의와 강직한男氣(남기)의 격렬함은 족히  凶賊(흉적)들의 간단을 서늘하게 하였으니 壯(장)한 사군자의

    氣槪(기개)였다고 한다.

       백세의 뒤에도 陽剛(양강)의 性質(성질)을 지닌 자는 敬嘆(경탄)안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그 기혈을 이어받은

    자손들이야 말할 수 있겠느냐? 세대가 비록 멀다고 하나 그이를 추모함이 마땅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綱常(강상)이 꽉막힌

    요즈음 간사한 언행이 날로 심하여 正論(정론)이 없어지고 衣冠(의관)을 한 무리들도 禽獸(금수)<짐승>처럼 휩쓸려 다니면서

    부끄러워할줄 모르니 追遠(추원)하고 報本(보몬)의뜻을 講(강)할 장소가 없느니라 이제 진원박씨는 그 묘소를 보호하기

    위하여 재각을 건립하니 아직도 古家(고가)의 좋은 풍습을 이어오니 어찌 사천공의 음덕이 아니 겠느냐?

        자손으로서 선덕을 추모함이 마땅할 것이다. 일찍 일어나고 밤에 자면서도 게으르거나 허황되지 않으며 아버지는

    가르치고 형은 권장해서 가훈을 지켜 멀리 전한 뒤에야 그 추모함이 영원할 것이다. 慕者(모자)는 무슨뜻이냐 不忘(불망)이다.

    不忘(불망)의 도리는 한마디로 말해서 효도이다.

 

                    --丙子(병자)1936년) 陽復月(양복월) 安東  金  寗  漢(안동 김 녕 한) 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