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崇德齋(청용재)參判公 諱謙亨(참판공 휘겸형 재실)전남 보성군 점암면 신안리 자료준비중입니다 |
▣參判公 諱 謙亨墓表(참판공 휘겸형묘표) 공의 휘는 謙亨(겸형)이료 자는 明淑(명숙)이며 진원박씨이다. 고려때 대장군인 진문이 시조이다. 여러 대를 지나 대제학인 휘 첨은 충의의 시호를 받았다. 직제학인 희중은 호 위남이다 문장과 도덕으로 當世(당세)의 推重(추중)을 받았다. 아들 휘생은 생원이요 문기 진사직장을 낳으니 공에게는 7세조가 되신다. 高祖(고조) 이의는 진사요. 曾祖(증조) 광전은 호 죽천인데 이퇴계 선생한테 글을 배웠다. 宣祖 壬辰亂(선조임진난)에 의병을 首倡(수창)하니 軍資監正(군자감정)를 제수하고 용산사에 배향하다 吏判(이판)을 贈職(증직)하고 文康(문강)의 시호를 내렸다. 祖(조)근효는 호 晩圃(만포)요 진사이다. 이분 또한 임란에 有功(유공)하여 執義(집의)를 증직했다. 아버지 춘수는 호 我誰齋(아수재)요 직장 벼슬을 하다 병자호란에 창의한 공으로 죄승지를 증직했다. 어머니는 황주이씨와 남평문씨인데 공은 문씨 소생이다. 집안 교육에 잘 익혀 문예가 早達(조달)하였다. 그러나 榮達(영달)에는 뜻이없었다. 보성에서 고흥의 신정에 移居(이거)하여 琴書(금서)를 즐기며 세상을 마치다. 기일은 11월 26일이다 도주동 北麓壬坐(북록임좌) 언덕에 장사하다. 부인 고령신씨는 司果(사과)인 회의 따님인데 묘는 雙兆(쌍조) 하였다. 4남1여를 낳으니 큰아들 만준은 同知中樞府事(동지중추부사)를 지내시고 차남은 만빈, 만보,만화 이다. 딸은 여산송경두의 처이다. 손자에 상희,상하,딸 여산송만헌 처는 큰아들 소생이요 .장석과 딸 여산 송석기 처는 2남소생이며 3남은 아들이 없고 상회와 딸 제하석 처는 막내아들 자녀이다. 曾孫(증손) 경덕,준덕은 호는 남계요. 문해을 하고 영덕,치덕,우덕,내득은 상희의소생이다. 용득,우득은 상하소생이요 수복은 장석 아들이며 사덕 래덕은 상회의아들이다. 나머지는 생략한다. 아! 공이 돌아가신지 지금 수백년이 되지만 묘비가 없어 자손들의 한이 되어 今秋(금추)에 종손 유근이 諸族(제족)과 벌석하여 입비하기로 모의하여 나에게 그 음기를 기록하라 하니 단문한 글이지만 사양치 못하고 선덕과 후계를 간략히 기록한다.
-丙申(1956년9월)9대손 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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