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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07
진원박씨
오늘날 전하는 진원박씨의 족보중 가장 오래된 것은 竹川先生(죽전선생)의 孫子(손자)인 東溪公春長(동계공춘장)<진사>이 1657년에 처음에 간행한 丁酉譜(정유보)이다. 거기에 시조는 諱(휘) 進文(진문)으로 기록 하면서 『 신라종성  仕高麗(사고려) 位至大將軍(위지대장군) 己上文籍不存 (기상문적부존) 不可攷(불가고)』라고  事行(사행)을 정리하였다. 그렇다면 『 시조 진문공은  신라박혁거세의 왕손으로 高麗朝(고려조)에서 벼슬하여 地位(지위)가 大將軍(대장군)에 이르렀고 그 이상은 文籍(문적)이 없어 可考(가고)할 수 없다 』는 말이다. 이어 東溪公(동계공)은 또 그 譜序(보서)에서 『  진원에 有亨(유형)보내어 舊譜(구보)를 가져다가 자손의 支派(지파)를 찾고 長興(장흥)에 片紙 (편지) 하여그 支派(지파)를 조사하고서 이렇게 刊行(간행)한다. 』고 하였으니 이미 그 훨씬 전에 족보가 있었음이 분명하며 동시에 시조 진문 장군에 관한 것도  오랜 文籍(문적)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始祖公(시조공) 在世(재세)의 時期(시기)는 葦南公(위남공)에서 逆算(역산)하여 대량12세기 고려 명종년간  전후로 짐작된다 . 한편 시조 진문공 이하 위남선조 이상의 上系先祖(상계선조)들의 住居地(주거지)는 확실치 못하여 언제부터 우리 박씨가 진원에 定着(정착)하였는지 단언키 어려운 면이 있다. 或人(혹인)은 위남선조때부터 진원에 정착하였다고 보는 이도  있지만 이는 상계보를 깊이 살피지 않는데 연유한 탓일 것이다. 始祖 進文公(시조 진문공)과   2세 孝大公(효대공)은 각기 대장군과 大相(대상)이었다는  官爵(관작)만 기록되어 있을 뿐 配位(배위)조차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3세인 檢校將軍(검교장군) 諱 贇(휘 빈)이 金吾衛將軍(금오위장군)을 지낸  진원오씨 시조 吳存石(오존석)의 사위가 되었고 4세인 判軍器監(판군기감) 成亮公(성량공)이 전주전씨의 시조인 全元呂(전원려)의 사위가 되었으며 5세인 文下侍중(문하시중)과 大提學(대제학)을 지낸 諱 瞻(휘 첨)이 진원오씨 諱 益(휘 익)의 사위가 된데다 또 6세인 全羅道兵馬水軍 節度使(전라도병마수군 절도사)洪瑞公(홍서공)전주 최씨 諱 松(휘 송)의 사위이며 7세 求禮監務(구례감무)諱 溫(휘 온)은 진원전씨<현.담양전씨> 大司憲(대사헌) 휘 의의사위가 되었다. 이상 上系(상계) 7세의 혼인 관계가 대부분 지금의 장성 주변 출신 名族(명족)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葦南先祖(위남선조) 이전부터 이미 진원현을 중심으로 살면서 近鄕(근향)의 名家(명가)들과 交流(교류)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고려후기말엽인 당시 사정으로 미루어 교통.통신이 어려운 위에 농촌 관습이 집성촌을 떠나서는 살지 않았으며 상경하여 官界(관계)에 있다가도 퇴직하면 歸鄕(귀향)하여 監農(감농)하고 後進(후진)을 양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선조들의 文籍(문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마당에 譜牒(보첩)에 나타난  配位(배위)의 기록들은 가장 詳考(상고)할 만한 證據(증거)가 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 박씨의 진원땅 定着(정착)의 연대는 대략 고려후기 명종 무렵 이후로 짐작되며 여기에서 珍原古縣(진원고현)을 중심으로 한 丘珍(구진)이나  珍原(진원)으로써 貫鄕(관향)을 삼고 살아온 것이라 생각된다.< 세종14년의 팔도지리지에 박씨가 주성으로 등재되었다.>
1922년 봄에 밀양박씨들이 주동이되어 밀성대군 등을 모신 遠德祠(원덕사)를 충북 옥천군 이내면 용안리에 세운 바 있었는데 당시 松林(송림)의陽亭公(양정공)南鉉宗(남현종)이 葦南先祖(위남선조)를 恭敬(공경)한 나머지 이사당에 밀성군의 后孫(후손)으로 從享(종향)케 한 적이 있었다. 그리나 우리 문중에서는 이같은 일은 先後(선후)가 맞지 않는 욕된 일이므로 일체 불참한 끝에 1988년 대종회의 결의로 葦南先祖(위남선조)의 位牌(위패)를 撤享(철향)시켜 世系(세계)를 바로 잡은 바 있다. 그 이후 事件(사건)이 연유가 되어都下(도하) 『한국인의족보.성씨의뿌리』등에 시조 휘진문을 밀양파에 連繫(연계)돤 양 간행.유포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부분을 확실히 정리할 겸  장성군 동화면 용정리 도산산하에 시조공 이하6세조의 祭壇(제단)을 묻고 그 경위를 기술하는 6세단비를 세우기에 이르렀다.후손들은 勿論(물론) 관심있는 諸賢(제현)의 착오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추기를 부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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