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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씨 본관

   박씨의 기원

          모든 박씨의 시조가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임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시조왕의 誕降說話(탄강설화)  비록 신화      적이는 하나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 기록이 있어 별로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古來(고래)로 박씨들은 萬派一祖      (만파일조)의 손으로 행세하여  서로 종씨로 통하는 아주 순수한 혈통을 자랑하는 씨족인 셈이다. 近(근)일천년에 달하는      신라왕조의 역대516왕중 박씨왕은 10명 뿐이이지만 新羅璿源世譜(신라선원세보)에 의하면 신라말의 경명왕은 八대군을      두어  이후 자손이 매우 번창하였다고 한다. 즉 장남 밀성대군, 2남 고양대군, 3남 속함대군, 4남죽성대군, 5남 사벌대군, 6      남완산대군, 7남 강남대군, 8남 월성대군 이 뒤에 퍼지고 퍼져 조선초엽에는 70종파로 분관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오늘      날 크게 행하고 있는 萬姓譜(만성보)에는 그 연원이 다양하게 쓰여 있는 바 或(혹) 파는 八대군에 연계되어 있고 혹 파는八대      군파의 이전 왕손으로  그런가 하면 연계를 알 수 없다는 파가 허다하다.  우리 진원박씨는 후자에 속하거니와 삼국사기에      는 경명왕이 無嗣(무사)라고 되어 있어 八대군 사실은 처음부터 의심할 여지가 컷다. 이 때문에 조선 태종때에는 八대군      사실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학자 박신은 유리왕때까지 끌어올리는 주장을 펴기도 하였다. 王系(왕계)나 私家(사가)할      것없이 예로부터 文籍(문적)문적이 애매하여 昭穆(소목)을 밝힐 수 없는 것은 어찌할 수없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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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의 본관은 488개이며, 2015년 현재 4,192,074명이 있다.

 

  진원박씨유래(珍原朴氏)

 

  •  . 오늘날 전하는 진원박씨의 족보중 가장 오래된 것은 竹川先生(죽전선생)의 孫子(손자)인 東溪公春長(동계공춘장)<진사>이 1657년에 처음에 간행한 丁酉譜(정유보)이다. 거기에 시조는 諱(휘) 進文(진문)으로 기록 하면서  신라종성  仕高麗(사고려) 位至大將軍(위지대장군) 己上文籍不存 (기상문적부적) 不可攷(불가고)라고  事行(사행)을 정리하였다. 그렇다면  시조 진문공은  신라박혁거세의 왕손으로 高麗朝(고려조)에서 벼슬하여 地位(지위)가 大將軍(대장군)에 이르렀고 그 이상은 文籍(문적)이 없어 可考(가고)할 수 없다 는 말이다. 이어 東溪公(동계공)은 또 그 譜序(보서)에서   진원에 有亨(유형)보내어 舊譜(구보)를 가져다가 자손의 支派(지파)를 찾고 長興(장흥)에 片紙 (편지) 하여그 支派(지파)를 조사하고서 이렇게 刊行(간행)한다. 고 하였으니 이미 그 훨씬 전에 족보가 있었음이 분명하며 동시에 시조 진문 장군에 관한 것도  오랜 文籍(문적)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始祖公(시조공) 在世(재세)의 時期(시기)는 葦南公(위남공)에서 逆算(역산)하여 대량12세기 고려 명종년간  전후로 짐작된다 . 한편 시조 진문공 이하 위남선생조 이상의 上系先祖(상계선조)들의 住居地(주거지)는 확실치 못하여 언제부터 우리 박씨가 진원에 定着(정착)하였는지 단언키 어려운 면이 있다. 或人(혹인)은 위남선조때부터 진원에 정착하였다고 보는 이도  있지만 이는 상계보를 깊이 살피지 않는데 연유한 탓일 것이다. 始祖 進文公(시조 진문공)과   2세 孝大公(효대공)은 각기 대장군과 大相(대상)이었다는  官爵(관작)만 기록되어 있을 뿐 配位(배위)조차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3세인 檢校將軍(검교장군) 諱 贇(휘 빈)이 金吾衛將軍(금오위장군)을 지낸  진원오씨 시조 吳存石(오존석)의 사위가 되었고 4세인 判軍器監(판군기감) 成亮公(성량공)이 전주전씨의 시조인 全元呂(전원려)의 사위가 되었으며 5세인 文下侍중(문하시중)과 大提學(대제학)을 지낸 諱 瞻(휘 첨)이 진원오씨 諱 益(휘 익)의 사위가 된데다 또 6세인 全羅道兵馬水軍 節度使(전라도병마수군 절도사)洪瑞公(홍서공)전주 최씨 諱 松(휘 송)의 사위이며 7세 求禮監務(구례감무)諱 溫(휘 온)은 진원전씨<현.담양전씨> 大司憲(대사헌) 휘 의의사위가 되었다. 이상 上系(상계) 7세의 혼인 관계가 대부분 지금의 장성 주변 출신 名族(명족)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葦南先祖(위남선조) 이전부터 이미 진원현을 중심으로 살면서 近鄕(근향)의 名家(명가)들과 交流(교류)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고려후기말엽인 당시 사정으로 미루어 교통.통신이 어려운 위에 농촌 관습이 집성촌을 떠나서는 살지 않았으며 상경하여 官界(관계)에 있다가도 퇴직하면 歸鄕(귀향)하여 監農(감농)하고 後進(후진)을 양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선조들의 文籍(문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마당에 譜牒(보첩)에 나타난  配位(배위)의 기록들은 가장 詳考(상고)할 만한 證據(증거)가 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 박씨의 진원땅 定着(정착)의 연대는 대략 고려후기 명종 무렵 이후로 짐작되며 여기에서 珍原古縣(진원고현)을 중심으로 한 兵珍(병진)으로써 貫鄕(관향)을 삼고 살아온 것이라 생각된다.< 세종14년의 팔도지리지에 박씨가 주성으로 등재되었다.>
     1922년 봄에 밀양박씨들이 주동이되어 밀성대군 등을 모신 遠德祠(원덕사)를 충북 옥천군 이내면 용안리에 세운 바 있었는데 당시 松林(송림)의陽亭公(양정공)南鉉公(남형공)이 葦南先祖(위남선조) 恭敬(공경)한 나머지 이사당에 밀성군의 后孫(후손)으로 從享(종향)케 한 적이 있었다. 그리나 우리 문중에서는 이같은 일은 先後(선후)가 맞지 않는 욕된 일이므로 일체 불참한 끝에 1988년 대종회의 결의로 葦南先祖(위남선조)의 位牌(위패)를 撤享(철향)시켜 世系(세계)를 바로 잡은 바 있다. 그 이후 事件(사건)이 연유가 되어都下(도하)
    한국인의족보.성씨의뿌리등에 시조 휘진문을 밀양파에 連繁(연번)돤 양 간행.유포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부분을 확실히 정리할 겸  장성군 동화면 용정리 도산산하에 시조공 이하6세조의 祭壇(제단)을 묻고 그 경위를 기술하는 6세단비를 세우기에 이르렀다.후손들은 勿論(물론) 관심있는 諸賢(제현)의 착오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추기를 부치는 바이다.

파별 분포 및 세거지 (珍原 朴氏)

        ◈  5개파의 세거지(世居地)를 살펴보면 박희중(朴熙中)의 세 아들이 9세손으로서 휘생(暉生), 곤생(坤生),

     진생(進生)인데, 휘생(暉生)은 성균관 (成均館) 생원으로 시거(始居)하여 보성(寶城)에서 종파(宗派)의 파조가

     되었으며, 차자(次子)인 곤생(坤生)은 성균진사 (成均進士)로 장성(長城)의 중파(中派) 파조가 되었으며, 삼자

     (三子)인 진생(進生)은 생원으로 승의랑(承議郞)을 지냈으며 장성(長城)의 계파(季派) 파조가 되었다.

     보성(寶城)종파에서는 휘생(暉生)의 아들인 10세손 박문기 (朴文基 ; 進士, 司?署 直長)의 세 아들이 11세손

     으로 흥원(興原) 계원(계原) 윤원(胤原)인데,장자(長子) 흥원(興原 ; 進士)은 장종파 (長宗派),차자(次子) 계원

     (繼原 ; 生員 昭格署 參奉)은 장중파 (長中派), 삼자(三子) 윤원(胤原 ; 生員)이 장계파 (長季派)의 파조가 되어

     오늘날 5개 파로 모든 종문사(宗門事)가 이루어지고 있다.

       ◈   파별(派別) 거주 분포(分布) 상황(狀況)을 살펴보면,

          ▶ 장종파(長宗派)는 흥원을 파조로 보성(寶城)과 장흥(長興) 지방에,

          ▶ 장중파(長中派)는 계원을 파조로 보성(寶城)과 고흥(高興) 지방에,

          ▶ 장계파(長季派)는 윤원을 파조로 보성(寶城), 고흥(高興), 여수(麗水), 화순(和順), 광양(光陽),

                               장성 (長城),전북(全北) 임실(任實), 경남(慶南) 사천(泗川) 지방에,

          ▶ 중파(中派)곤생을 파조로 장성(長城), 담양(潭陽),나주(羅州), 신안(新安)과 전북(全北)의 임실(任實),

                             충남(忠南)의 연기(燕岐), 보은(報恩) 등지에,

          ▶ 계파(季派)는 진생을 파조로 장성(長城), 담양(潭陽), 나주(羅州)와 전북(全北)의 임실(任實)지방에

                            각각 세거(世居)하면서 집성촌(集成村)을 이루고 있었으나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

                            하면서 도시집중화 현상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 현재는 광주,서울 또는 지방도시로 점차

                            거주를 달리하고 있다.

       ◈  통계청 인구조사 자료에 의하면 진원 박씨(珍原 朴氏)는 전국에2000년기준 7,403세대(世帶)(2000년기준),             33,630명(名)(2015년기준)이 산거(散居)하고 있다.  

지역

가구수

인구수

지역

    가구수

 인구수

서울

1,856

7,517

강원

62

301

부산

309

1,491

충북

91

414

대구

40

212

충남 /세종

106

566/175

인천

307

1,684

전북

239

1,155

광주

1,336

5,471

전남

1,553

4,751

대전

95

575

경북

49

291

울산

68

388

경남

126

847

경기

7,604

3,992

제주

24

188

가구수 (2000년도기준) 7,403          인구수(2015년기준) : 33,630

강릉(江陵)박씨의 유래                                                    

  1. 시조 박순(朴純)은 신라 파사왕(破娑王)의 14세손인 박유의 18세손으로 명종(明宗)4년(1174년)에 문과 에 급제(及第)한 후 병부상서가 되어 석인의 모반을 제거한 공으로 전국공신이 되었으며, 후일 좌복야,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역임하고 계림군에 봉해졌으나 관직을 버리고 강릉(江陵)에 내려가 야인(野人)으로 일생을 마쳤다. 후손들이 강릉에 정착(定着)하여 대대로 살면서 본관을 강릉으로 하였다.
  2. 강릉박씨는 1985년 현재 14,643명이 있다.
  3. 묘소(墓所)는 강릉에 있다.
  4. 대표적 인물(人物)
    • 박수량(朴遂良) - 용궁현감, 사섬시주부 등을 역임(歷任)하였다.
  5. 항렬(行列)표
 

24세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東)

(容)

(均)

(鍾)

(澈)

(相)

(烈)

(敎)

(善)

(濟)

(極)

(炳)

(重)

(銖)

(浩)

(槿)

(熙)

(栽)

(錫)

(泳)

(柱)



(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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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원박씨족보 2019.5.7수정   박민홍 010-2114-3355